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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1년 봄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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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꾹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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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
채정순
채정순

딸꾹질

과식을 한 탓일까? 속이 거북해서 내과 병원을 찾았다.
날씨가 변덕이 심해선지 진찰실 앞에는 감기 환자들로 북적거린다.
접수하려고 줄을 서려는데 웬 뻐꾸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주범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니 앞사람이 딸꾹질을 하고 있다. 얼굴은 초췌하지만, 어깨와 팔뚝에 문신한 건장한 남자다. 딸꾹질 소리가 오뉴월 뻐꾸기울음을 방불케 하여 사람들의 시선이 절로 모인다. 본인도 머쓱한지 며칠째 딸꾹질이 멎지 않아 죽을 지경이라며 우거지상을 한다. 모두 연민이 가는 표정들이다.
접수하고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갑자기 내 입에서 딸꾹질이 나온다. 전염성은 아닐 텐데 내 몸이 속절없이 말썽을 일으킨다. 우렁찬 남자 소리에 비하면 비루먹은 정도지만 눈치도 코치도 없이 자꾸 나온다. 다행히 아무도 듣지는 못해 재빠르게 입술을 앙다물고 배를 움켜쥔 채 정수기로 간다. 정수리 옆구리에 있는 종이컵을 빼 물을 마시는데 무단히 속이 상한다,
왠지 남자의 딸꾹질은 이 공간에서는 인정되는 것 같고, 내 딸꾹질은 흉내를 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언젠가 코대답도 못 하고 가만히 있던 왜소한 말더듬이가 생각이 나서일까. 오래전의 일이다. 친구들과 남해 일대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시외버스 뒷좌석에 앉아 여독에 못 이겨서 등걸잠을 자고 있었다. 얼마나 잤을까, 혼몽한 가운데 말을 심하게 더듬는 남자의 음성이 들렸다.
“다다 다음 정정 정류장이 싸 싸 싸 싸리동 입니까?
그 소리에 살포시 눈을 떠보니 앞 칸에서 금강역사 같은 남자가 작고 왜소한 제 옆의 남자에게 길을 묻고 있었다. 하지만 옆 남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금강역사는 다급한지 다시 크고 명확하게 물었지만, 그는 앞자리의 의자 덮개만 뚫어지게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승차 때 기사와 소통하는 것으로 보아 귀도 먹지 않은 것 같은데 너무한다 싶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옆 칸의 아주머니가 다음이 싸리동이 맞음을 친절히 알려주었다. 금강역사가 아주머니에게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왜소한 남자를 보며 눈을 한껏 흘기며 말했다.
“모모 모르면 모모 모른다고 대답을 해해해주면 되지, 사사사람을 무시한다.” 그가 다음 정류장에 내리자 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달아난 잠을 재차 청하려고 눈을 감는데 금강역사에게 장소를 알려준 아주머니가 왜소한 남자에게 나직이 묻는 소리가 들렸다. “알건 모르건 사실대로 대답을 해주지 왜 그랬냐?” 라고 궁금함을 표했다. 그때야 정색을 하고 입을 여는 그의 말은 뜻밖이었다.
“마마마 맞아 죽죽죽 죽으려고요? 힘 힘 힘 힘도 세세세 세게 생생생 생겼던데요.” 그도 심한 말더듬증이었다. 그 바람에 주위의 승객들은 대놓고 웃지는 못하고 의자에 몸을 태아처럼 웅크리고 깜박깜박 넘어갔다.
무심을 가장했다가 질펀하게 웃은 그때의 죄 때문인가? 참 이상하다. 나오던 딸꾹질도 물을 마시면 들어가는 법인데 이 무슨 배반인지 몇 잔을 거푸 비웠는데도 당최 숙지질 않는다. 그 당시 함구한 왜소한 말더듬이가 떠오르며 침묵으로 일관한 그의 심정이 새삼 이해가 간다. 상황판단은 같은 처지에 있으면 더 잘 되나 보다. 만약 왜소한 말더듬이가 대답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말대로 금강역사 말더듬이에게 멱살을 오지게 잡혀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보통사람 같으면 인간이 모방의 동물이라 쉽게 흉내를 낸다고 이해 할 수도 있지만, 핸디캡이 있는 자는 그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사람들이 의식되어 옆 방을 둘러보다가 화장실에 갔다 오기도 했다. 코를 막고 숨을 참아보고, 혀를 빼물고 한참을 있어 봐도 딸꾹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나오지 않는 기침까지 해대며 특히 남자와는 공간이 허락할 수 있는 최대의 거리에서 머뭇거린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고 유리알처럼 세심해 사소한 일에도 각이 선다 싶어서다. 손님들이 귀를 쫑긋 세우는 것 같고, 남자는 희번덕한 눈으로 달려들려는 것도 같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염치없고 체면 없는 내 딸꾹질을 오롯이 꺼내어 바닥에 패대기를 치고 싶다.
얼마나 서성거렸는지 창문으로 넘어와 수부 쪽에 비치던 햇살이 대기실 의자에 가 앉아있다. 어찌 이제 조용하다 싶어 둘러보니 뻐꾸기 소리도 나지 않고, 남자도 시야에 없다. 그제야 차례가 다 됐다 싶어 무대 중앙으로 나오는 데 아니나 다를까 내 이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얼른 진찰실로 들어가니 의사와 간호사가 한참을 찾았다고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묻는다. 그 답을 해야 할 내 입에서 딸꾹질이 제가 먼저 불쑥 나선다.
“딸꾹딸꾹”
의사와 간호사의 눈동자가 둥그러지고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찰라, 내가 빠르게 대답을 한다.
“맞아 죽을까 봐 피해 있었어요. 덩치도 크고 문신도 많고.”
내 말이 끝나는 동시에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물고 아예 꼼작도 못 하고 있다. 웃음이 저렇게 전신을 경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경이롭다.
고요해진 진찰실에는 이제 내 생리현상인 딸꾹질 소리만이 낭자하게 울려 퍼진다. 큰 말이 나가면 작은 말이 큰말 짓을 한다는 것을 인식시키기라도 하듯이…. 세상에는 힘에는 도리 없이 주눅이 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에도 도덕심이 전혀 없는 내 딸꾹질은 횡경막을 보이지 않게 들었다 놓았다 하며 요란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기고자 소개

채정순

수필가, 수필세계작가회원

수필집 『붉은 투구를 쓰고』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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