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1년 봄호
청소년이 힘들 때
국번없이 1388
24시간 연결됩니다

할단새

본문

부모님과 함께
피귀자
피귀자

할단새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카투만두라는 왕국에는 '할단새'에 대한 전설이 있다. 그곳의 낮은 따뜻한 봄날 같은데, 밤이 되면 온도가 급격히 떨어진다고 한다. 이 새는 낮에는 먹잇감을 구해 배불리 먹고 이곳저곳을 활강하며 즐기다가 밤만 되면 어려움에 처했다.
해가 지면 히말라야의 찬바람과 눈발이 날리는 혹독하게 추운 밤이 찾아오는데, 할단새는 다른 새들과 달리 미처 집을 짓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깃털로 무장해 보지만 살을 에는 추위 앞에서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이 새는 추위 속을 헤매면서 이렇게 결심한다고 한다. ‘내일은 꼭 집을 지어야겠다. 반드시!’
신변잡기에 빠져 놀기 바빠서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시간의 두께가 얇아진 뒤에야 허겁지겁 허둥대는 내 마음이 꼭 그 할단새 같다.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지만 매번 반복하다가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또 이러고 있으니. 가난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고통의 밤이 지나고 그 혹독한 추위에도 잠깐 눈을 붙였던 할단새는 아침 햇살이 산등성이 너머로 내리쬐기 시작하자 눈을 뜬다. 춥고 어두운 밤을 지샜던 이 새의 눈앞에 아침 햇살에 빛나는 은세계가 펼쳐지자, 순식간에 자리를 박차고 날아오른다. 은빛 세계를 활강하는 즐거움을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다. 집을 짓겠다는 지난밤의 굳은 결심은 그만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곧 밤은 또 찾아오고 살갗을 파고드는 추위 속에서 이 새는 다시 결심한다. ‘내일은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집을 지어야겠다.’'라고.
인간의 망각은 유효기간이 십 분으로 한 시간이 지나면 오십 퍼센트를 잊고 하루가 지나면 칠십, 한 달 후는 팔십 퍼센트를 잊는다고 한다. 변하지 말아야하는 마음은 변하고 변해야하는 행동은 좀체 변하지 않는 것이 인간인가. 사람 사는 세상은 과거나 현재나 비슷한 걸까. 원효대사도 중생의 가장 무서운 병이 내일로 미루는 습관 이라고 하셨다는 걸 보면. 결심하고 잊어버리고 후회하는 버릇은 동서양도 다르지 않은가 보다. 스코틀란드 속담에 ‘위기가 지나가면 신은 잊혀진다’ 라고 했다니, 어느 나라든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한 모양이다.
사람들은 할단새를 ‘날이 새면 집 지으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날이 밝고 햇살의 온기를 느끼면 어젯밤의 추위는 잊어버리고, 밤새 수많은 고생을 겪었지만 낮에는 잊고 밤에는 또 절규를 하다가 끝내 집을 짓지 못하고 살아가는 새. 밤이 되어서야 집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처량하게 울다 얼어 죽는 운명의 새. 그런 미물을 닮고 있는 자신을 생각하며 얼굴을 붉힌다.
무엇이든 벼락치기로 하며 일을 미루다보면 포기하게 되고 무기력해질 수 있다. 시작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 날, 하기 싫은 일이라도 하다보면 그것이 계기가 되어 계속하게 된다. 성공의 대명사 빌게이츠도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말 앞에 ‘절대’를 붙였다.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며 살 수 있는 시간은 대체로 정해져있다. 시간은 멎어 있는 게 아니란 걸 자꾸만 부피를 키워가는 나이가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비슷한 시간을 가진 사람들 중에도 진짜 바쁜 사람은 바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시간을 통제하는 지혜와 일하는 즐거움에 젖어 성공하는 것을 보면 모두가 마음의 문제가 아닐까. 밥상에 얹을 것 없어 급하게 음식을 하다보면 설익기 마련이다. 이번 혼쭐을 계기로 준비성 많은 선배 선생님의 말씀을 새겨들어야겠다. 할단새처럼 생각만으로 끝내지 않게, 발뒤꿈치 저리지 않으려면

기고자 소개

피귀자

수필가

수필집 《종이날개》,《그대에게 가는 길》

《수필과 비평》문학상 수상

맨위로 이동 맨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