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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0년 여름호
청소년이 힘들 때
국번없이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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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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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
이미영
이미영

어름

‘예의는 엿 바꿔 먹은 지 오래된 녀석들’이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젓는다. 흰 가운을 입은 선생님은 제1군 감염병에 대해 열강 중이다. 오늘도 교실 밖 소음과 뒤섞여 강의 내용을 잘 알아들을 수 없다. 복도가 메아리치도록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가는 여학생, 그 뒤로 숨이 멎을 듯이 웃으며 쫓아가는 또 다른 여학생의 머리가 교실 유리창 너머로 솟구쳤다가 가라앉는다.
선생님은 소란한 복도의 상황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교탁 쪽의 문을 열어 한바탕 꾸지람을 한다. 목소리가 작아지긴 했지만 별 상관이 없다는 듯 계속 장난을 친다. 선생님이 교단을 내려가자 교실 안도 일순간 술렁였다. 제각각 사연을 가진 스무 명 남짓한 수강생들이 일제히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요새 애들이란 쯧쯧.” 교실에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는 새댁, 두 딸 밑으로 고등학생 아들을 둔 늦둥이 엄마, 세 아이를 키우느라 안 아픈 곳이 없다고 노래를 부르는 쌍둥이 엄마, 남편이 집밖으로 나가는 것을 싫어해서 억지로 허락을 받았다는 외둥이 엄마,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엄마의 잔소리에 못 이겨 등록했다는 어설픈 총각까지 다양한 조합을 이루었다. 요란한 복도의 소음으로 출렁였던 교실은 선생님이 교단으로 돌아오자 이내 잠잠해진다.
“여러분 내일부터 고3 직업 교육을 받는 학생과 함께 수업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불만 섞인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고3 아이들이 수선스럽기는 하지만 졸업을 하고 간호조무사로 취업해 보겠다고 학교에 가는 대신 학원으로 오는 아이들입니다. 이모처럼 형님, 언니같이 예쁘게 봐주세요.” 내일부터 교실이 시끄러워 수업이 안 되겠느니 조용한 다른 학원으로 갈 걸 잘못했느니, 불편한 심사가 튀어나온다.
그 다음날 성인과 학생으로 이루어진 수강생들이 한 교실로 모여든다. 뒷자리를 차지한 학생들은 주변 상황에 아랑곳없이 여전히 시끌벅적하다. 늦둥이 엄마는 한 번 힐끔 돌아보고는 한숨을 쉰다. 쌍둥이 엄마는 양 옆을 살피다가 옆자리 동년배와 수군거린다. 어설픈 총각은 엉덩이를 들썩거리다가 남학생 한 명에게 눈도장을 찍는다. 앞자리부터 가운데 중간자리까지는 미동만 감지된다. 그 뒤쪽으로는 아예 뒤로 돌아앉아 떠드는 아이, 책상에 엎어져 자는 아이, 아침부터 군것질거리를 펼치는 아이로 어수선하다. 한 교실에 앞과 뒤로 보이지 않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4교시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다. 앞자리는 삼삼오오 도시락을 펼친다. 학생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어설픈 총각이 도시락 가방을 들고 쭈뼛거리다 뒤를 따라 나간다. 점심시간이 다 지나고 수업이 시작되고서야 학생들이 하나둘 자리로 돌아온다. 쌍둥이 엄마가 뜬금없이 “얘들아 밖에서 컵라면 사 먹으면 몸에 해롭다. 내일부터 엄마한테 도시락 싸 달라고 해라.” 학생들은 서로 얼굴만 멀뚱히 쳐다본다. 마지막 6교시를 남기고 쉬는 시간에 여학생들은 책 대신 큰 거울을 책상 위로 올리더니 화장을 하기 시작한다. 늦둥이 엄마가 쓸데없이 거든다. “너희 나이에는 맨얼굴이 제일 예뻐.” 여학생들이 피식거린다. 며칠 후 교실로 들어오는 학생들의 손에는 도시락 가방이 들려 있다.
“얘들아 이것 좀 먹어 봐라.”
“잘 먹겠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자 외동이 엄마가 비닐봉지에서 사과를 꺼낸다. “학생들 참 힘들겠다. 이제 와서 하루에 6시간씩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허리가 뒤틀린다.” 사과를 깎아 학생들에게 건넨다.
“집에 가서 우리 애들한테 그랬잖아요, ‘엄마가 학원에 있어 보니 알겠더라. 너희들이 얼마나 힘든지’, 그랬더니 우리 애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쌍둥이 엄마는 이쪽저쪽 아울러 가며 침을 튀긴다. 엄마들이 한목소리로 “맞다, 맞아. 우리 애들도 엄마가 달라졌대요.” 하며 웃는다.
처음 이삼 일은 앞쪽은 뒤쪽이 예의가 없다고 하고 뒤쪽은 앞쪽이 잔소리가 많다고 생각했다. 하루 이틀이 더 지나자 앞쪽은 자연스레 이모가 되고 언니가 되어 마다하는 아이들 손에 먹을거리를 쥐어 주었다. 뒷자리 학생들도 공부가 서툰 어른들에게 노트 정리를 보여 주며 화답했다.
마음의 칸막이가 쳐 있을 때에는 냉기류가 흐르더니 간격이 허물어지자 따뜻한 시선으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뒤쪽은 잔소리 안에 든 관심을 밀어내지 않고 앞쪽은 소란스러움 속에 담긴 발랄함을 귀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앞과 뒤의 어름은 어느새 얼음처럼 녹아내렸다

기고자 소개

이미영

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 등단

작품집『너에게 가는 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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