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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1년 봄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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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본문

선생님 글밭
김민숙
김민숙

고맙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고 했다. 나는 그 말 한마디를 못해서 빚을 지는 일이 종종 있다.
생각만으로도 목이 메는 사람이 엄마다. 그런 엄마께 한 번도 하지 못한 말이 있다. ‘고맙습니다.’ 이제는 말할 기회도 없어서 갚을 수 없는 빚이 된 말이다. 말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 마음을 다 전할 수 없어서 그냥 어물쩍 넘겼던 거다. 부모님께 받은 은혜가 어찌 고맙다는 인사로 감당할 일인가. 부모 자식 간에 그걸 말로 해야 아느냐고, 이심전심이란 말이 이럴 때를 위해 생긴 말이라고 항변해 본다. 정말 그랬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에게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는지, 본래 내 몫이었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어찌 생각하셨을까? ‘말 안 하면 귀신도 모른다.’ 는 속담도 있다. 가끔은 서운하시지나 않았을지, 이제는 알 길이 없다.
아이들에게서 ‘엄마, 고마워요’라는 인사를 가끔 듣는다. 세대 차인가. 나는 하지 못한 인사를 아이들은 쉽게 한다. 엄마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빚 갚듯 또박또박 되돌려 주는 인사가 흐뭇한 것만은 아니다. 문자로 받을 때는 예사로이 넘기지만 면전에서 정색으로 인사를 할 때는 내가 오히려 쑥스럽다. 도리어 섭섭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부모·자식 사이에 거리가 한 뼘 더 멀어진 것 같아서다.
너무 큰 것은 당연해서 쉽게 잊는다고 한다. 부모님의 은혜가 그렇고, 국가의 존재가 그렇다. 생명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공기, 물 등 자연에 대한 고마움도 당연한 듯 잊고 산다. 몸을 이루는 장기에 대해서 매일 소리 내어 감사 인사를 하라는 법문을 들은 적이 있다. 위장, 간장, 신장, 심장, 폐장에게 감사 인사를 하노라면, 말하고 스스로 듣는 동안 마음이 그 곳에 머물게 되어 장기에 해로운 것은 자연 피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들을 때는 웃음이 나왔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지극히 옳은 말씀이다.
‘고맙다’ ‘미안하다’ ‘존경한다’는 말은 선의고 덕담이다. 감정이나 진심을 드러내는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인사말에 인색하다고 한다. 삶이 팍팍해서 인사할 여유가 없어진 걸까. ‘고마울 일이 있어야 고맙다는 말을 하고 존경할 만한 어른이 있어야 존경하지요’라고 젊은이들이 또박또박 따질지도 모르겠다. 반드시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는 그 말로 부족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어서 그만 얼버무릴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내가 엄마께 그랬듯이, 선생님께 그랬듯이,
요즘 우리말의 길이가 자꾸 짧아진다. 푸근하고 넉넉한 말은 사라지고 날카롭고 옹졸한 말이 넘쳐난다. 얼굴을 마주 대하기보다 스마트폰으로 날려 보내는 문자 전송이 대화의 주를 이루다 보니 예를 갖출 공간도 없다. 속도를 앞세워 주요 단어의 첫 글자만 합쳐 만들어낸 신조어가 연일 쏟아진다. 늙은이는 젊은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만큼 세대 간 거리도 멀어진다. 말이 다르면 생각도 달라진다.
나는 웬만한 인사는 챙기는 편이다. 특히 남에게는 사소한 일에도 빠뜨리지 않으려 애쓴다. 작은 고마움에는 쉽게 하는 말을 큰 고마움 앞에서 멈칫거릴 뿐이다.
어버이날이나 생신에 용돈이나 선물을 준비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리본을 달아드리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다만 소리 내어 고맙다고 말하거나 편지로 쓰지 못했다. 왠지 쑥스럽고 부끄러워서였다. 섭섭한 말을 뱉을 때는 부끄럽지 않았는데 왜 고맙다는 말이 부끄러웠을까. 아마도 버릇이 들지 않아서였을 게다. 감사 기도를 해야 감사할 일이 생긴다고 한다.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고마운 일도 생기게 된다고 바꿔본다. 생각해보면 살아오면서 고마웠던 일이 너무 많다. 이제 더는 빚지고 싶지 않다. 수행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고마워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부터 소리 내어 인사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조금 쑥스럽더라도

기고자 소개

김민숙

수필가, 교육자

작품집 『어릿광대』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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