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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0년 여름호
청소년이 힘들 때
국번없이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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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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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글밭
정성화
정성화

어시스트

 언니는 나보다 한 살 위였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재수를 하는 바람에 나와 같은 해에 대학 입시를 치르게 되었다. ‘대학 예비고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언니는 자신이 원하던 대학에 무사히 합격했고, 입학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친 다음 날, 언니는 담담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니는 그대로 대학에 진학해라. 나는 일단 취직자리부터 알아봐야겠다. 대학은 나중에 가도 되니까.”  하루아침에 소녀가장이 된 언니는 대학 합격통지서를 구겨버렸고, 그 길로 회사원이 되었다. 다섯 명이나 되는 동생들과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한 언니는 그 후 대학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어머니는 내가 중학교 교사가 된 것을 친척들에게 자랑삼아 얘기하곤 했다. 나는 그 때마다 언니 몫의 행복을 가로챈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로웠다. 언젠가 언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니가 나였더라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다.”
그랬을까. 아무래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언니의 희생을 ‘어시스트’(축구에서의 도움골)라는 명목으로 받아 챙긴 동생이었다.  
항아리 안에 참게를 여러 마리 넣어두면 한 마리도 밖으로 기어 나오지 못한다. 한 마리가 항아리 벽을 기어오르면 그 밑에 있던 참게가 바로 끄집어 내리기 때문이다. 인간의 심리도 마찬가지다. 서로 비슷한 처지에 있거나 같은 대우를 받고 있을 때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다 어느 한 사람이 조금 나은 대우를 받거나 앞서 가기 시작하면 그들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내가 못 하면 너도 못 해야지.’라는 심리다.  그래서 남의 슬픈 일을 위로하기는 쉽지만 그의 경사를 내 일처럼 기뻐하기는 어렵다. 좋은 일이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어스시트’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몇 년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에게 함께 뛰고 싶은 동료 이름을 적어보라고 했더니, 박지성 선수가 단연 으뜸이었다고 한다. 언어도 서투르고 국적도 다른 그가 뽑힌 걸 두고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자기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 동료에게 공을 패스함으로서 슛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이른바 ‘어시스트’를 가장 잘 하는 선수였던 것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그렇다. 내가 힘들어하고 있을 때 조용히 다가와 아무 조건 없이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도와줄 때도 즉각적이고 자연스럽게 도와주며 굳이 어떤 이유를 대지 않는다. 그럴 때의 고마움은 뼈 속에 저장된다.  
비가 내려도 축구 시합은 진행된다. 퍼붓듯 내리는 비속에서 질주하는 선수들을 보고 있으면, 삶도 저렇게 토 달지 말고 날씨 탓하지 말고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전에는 축구를 볼 때 골을 잘 넣는 선수에게 주목하곤 했는데, 요즘은 어시스트를 잘 하는 선수를 눈여겨본다. 개인의 영광보다 팀의 승리를 먼저 생각하는 선수가 더 대단해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선수의 어스시트 역시 다른 선수의 어시스트를 받아 이루어진 것임을 알게 된다.
삶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알든 모르든 많은 어시스트가 쌓여서 그 사람의 현재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어느 날 기적같이 내가 한 골 넣었다 하더라도, 그 공 역시 누군가 나를 위해 양보해준 어시스트임을 알아야 한다

기고자 소개

정성화

수필가,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작품집 『소금쟁이 연가』, 『봄은 서커스트럭을 타고 』 외

현대수필문학상 수상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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