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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0년 여름호
청소년이 힘들 때
국번없이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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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교실에서

본문

대전청소년길잡이
하정숙
하정숙

바다가 보이는 교실에서

구룡포의 바다 색깔은 유난히 맑고 곱다. 교문을 나서 몇 발자국만 나가면 정겨운 동네 개울처럼 바다가 반겨 준다. 작은 돌들이 깔린 물속에 손을 담그면 조개라도 한 움큼 주워 올릴 것 같다. 교문 밖에 바로 바닷물이 출렁이고,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운동장에 들어서면 미역 냄새가 싸하게 건져진다. 그 미역 향내는 해미와 함께 바다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
아침 일찍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고깃배와 그 뒤를 따르는 갈매기 떼를 볼 때면 바다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도시 생활에 익은 몸과 마음이 다시 터전을 도시로 옮기자고 유혹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갯바위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갈매기들이 내게 바다 이야기를 들려주며 도리어 나를 유혹한다.
아이들의 말을 듣자면 하루에도 바닷물 색깔이 일곱 번도 더 바뀐다는 구룡포 바다. 그 바다가 보이는 교실에서 수업할 때면 나는 어느새 바다가 된다. 그중에서도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1학년 1반 교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다 교실’이다. 왼쪽 창으로는 바다가 얼굴을 내밀며 한달음에 달려와 안기고 복도 쪽 창밖으로는 고운 백사장을 낀 해수욕장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그리고 해수욕장 백사장이나 갯바위에 앉았다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갈매기들의 모습은 또 얼마나 환상적인지!
사람들은 푸르고 맑은 바다를 더 자주 찾는다. 그런데 회색빛 바다는 바다의 깊은 마음을 더 잘 말해 준다. 하늘이 울적하여 회색빛을 띨 때면 바다도 같은 회색이 되어 하늘을 진득이 품어 준다. 때로는 바다도 운다. 하늘이 비를 안는 날은 바다도 추적추적 운다. 혹 하늘이 답답하여 바람으로 흔들기라도 하면 바다는 어느새 해조음을 내며 하얀 물거품으로 그 마음을 받아 준다.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와 함께 자라는 구룡포의 아이들을 만나고 나서 나는 바다도 때론 운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바다처럼 울고 싶은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단추 하나를 달아 줄 엄마가 없어 교사인 내게 부탁하곤 “선생님이 단추를 달아 주셔서 참 따뜻하게 지내요.” 하며 조심스레 건네는 아이들의 말이 갈매기 울음소리처럼 내 가슴에 파고든다.
‘아버지’의 빈자리보다는 ‘엄마’의 빈자리가 더 크다는 것을 아이들의 휑한 눈망울이 말해 준다. ‘죽음’으로 헤어진 것이 아니라 ‘헤어짐’이라는 이름으로 엄마가 떠난 자리에 남아 있는 아이들은 피지도 못한 꽃이 되어 시들시들 말라 들어간다. 그럴 때 나는 정말 그 애들한테 미안하다. 나만 아프다고, 나만 외롭다고, 투정하며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아이들을 보면서 내 못난 마음을 다시 돌이켜 본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외로워도, 한창 피어나야 할 사춘기의 꽃이면서 가슴앓이하는 그 아이들의 속내보다야 더 아프겠는가.
아프면서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프던 내 학창 시절도 돌아본다. 아프지만 견디며 자라 달라는 부탁을 내 아이들에게 보내며 힘들고 지친 길이지만 감사의 마음으로 받는다. 내게 ‘선생님’이란 이름을 맨 먼저 안겨 준 아이들이 있는 바닷가 교실에서 ‘우리 아이들이 조금만 덜 힘들었으면, 조금만 덜 외로웠으면’ 하고 기도하며 교단에 선다. 교사가 아닌 엄마의 마음이 되어서.
바다가 유난히 파랄 때는 하늘이 유난히 맑을 때이다. 파장이 긴 파란색이 바닷속까지 깊게 투영해 들어온 빛을 욕심 없이 다시 반사해 주는 것이다. 때론 내 마음도 이렇게 투명할 때가 있었으리라. 속도 알 수 없을 만치 깊게 내려가도 맑기만 하던……. 푸름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바다에 마음을 얹어 본다. 이렇게 바다에 마음을 적시고 바다를 닮은 아이들과 같이 있다 보면 내 마음결에도 고운 쪽물이 배어들 것만 같다.
바다는 하늘을, 하늘은 바다를 닮았다. 이렇게 서로 마음 나누는 닮은꼴이지만 하늘과 바다는 수평선 자락에 가서야 겨우 손을 맞잡는다. 늘 바라봐 주는 바다의 애틋한 맘을 아는지 해는 수평선에서 잠이 들고 수평선에서 아침을 연다. 그러면서도 하늘과 바다는 절대 서로의 사랑에 대해 보채지 않는다. 그렇게 은은하게 기다려 주는, 채근하지 않는 사랑을 지닌 바다와 하늘을 닮아 보드기로 머무는 아이들 곁에 날빛이 되어 다가가고 싶다.
교실 창 너머로 갈매기가 힘차게 날아오른다. 오늘따라 유난히 바다색이 푸르다. 희망의 빛 대신 방황의 빛깔이 아이들에게 늘 새로운 ‘시작’을 말해 주라는 듯 바다는 오늘도 파랗게 내게 부딪쳐 온다

기고자 소개

하정숙

신동중학교 교사, 수필가 『문학예술』로 등단(2005)

수필집 『미모사처럼 나를 여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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