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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0년 여름호
청소년이 힘들 때
국번없이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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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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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글밭
윤월로
윤월로

길 위에서

지금 나는 대전의 길을 달리고 있다. 애마의 운전대를 잡고서.
운전을 한지도 어언 30여년이 지나고 있다. 학원에서 이론과 초보기술을 습득한 뒤 면허시험에 합격했다. 도로주행시험이 따로 없던 그 시절 실질적인 운전연습과 도로연수는 남편으로부터 받았다. 여차하면 이혼단계까지도 갈 수 있다는 어려운 부부연수라는데 남편은 의외로 차근히 잘 가르쳐주었다.
"큰 차가 오더라도 겁 먹지말고 침착하게...그렇지. 그렇지. 아니, 초보가 그렇게 빨리 달리면 어떻게 해! 큰일 난다니까! "
처음에는 고맙게 들리던 지도 겸 충고가 어느 사이엔가 잔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어쨌든 겁 많고 새가슴인 내가 마음 편히 운전 할 수 있도록 심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적정궤도에 오를 수 있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시간이 절약되는 매력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차와 함께 길 위를 달린지 어느 새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해온 것이다.
일찍이 70년대에 면허를 취득한 남편은 '천천히 서(徐)'씨 답게 동승한 사람이 편안함을 느낄 만큼 운전을 잘 하는 편이라고 생각되었다. 함께 드라이브라도 가는 길이면 기분이 좋아진 나는 한 마디 거들게 된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운전은 잘 한다고 말할 수 없는 거야. 백 번 잘 하다가도 한 번 잘 못하면....."
라면서 자못 자만을 경계했다.
오늘도 남편의 말들을 기억해내며 조심조심 길 위를 달린다.
여기는 갈마 사거리. 이곳을 지날 때마다 나는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려온다. 오늘도 내 앞의 신호등 뿐 아니라 사방의 신호등과 차들의 움직임을 훑듯이 살핀다. 벌써 20여년이 지난 일이지만 생각할 때 마다 그 일이 생생하다.
그날은 내차가 정지선 맨 앞에 자리하게 되었다. 녹색 신호등이 켜지기를 기다리다가 신호등이 바뀌는 것을 보고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센 다음 가속기를 밟았다. 신호등이 켜져도 절대로 불쑥 나가지 말고 속으로 셋을 센 다음 출발하라는 남편의 지시 겸 부탁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출발을 하면서 느낌이 이상해 왼편을 바라보는 순간, 마구 달려오는 차에 내 차의 옆구리가 받히고 말았다. 정말 0.001초 동안의 일이었다. 신호가 바뀐 것을 무시하고 내달린 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것이다. 보험사도 경찰도 100% 상대방의 신호위반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나는 가슴뼈가 부러져 오롯이 두 달여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그때는 정말 억울한 생각뿐이었다. 운이 나빴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이런 일을 당해야 했나 하는 두려운 마음이 앞서기도 했다. 그 날 실제로 교통법규상 나의 잘못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마음이 가르쳐주는 것이 있었다. 사람이 앞만 보고 달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야 할 길을 향하여 똑바로 보고 달려야하는 것은 맞지만 양 옆도 살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나는 몸으로 배운 것이다. 나만 잘 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도 잘 하고 있나 살펴보아야 하고, 함께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은 고통 속에서 건진 보석이었다.
체력으로도 체질적으로도 약하게 태어난 나는 육남매의 맏이로 태어났지만 나 자신을 추스르기에도 늘 기운이 모자랐다. 그래도 애면글면 살다보니 인연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셋이나 낳아 길렀다. 늘 부족한 기운으로 교직에, 육아에, 살림살이에 정신없이 살아오다보니 옆을 살필 여력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저 닥친 하루하루를 있는 힘껏 살아내는 것이 최선(最先)이고 최선(最善)이었을 뿐이었다.
길 - 내가 달리고 있는 시간의 길도 있다. 오늘이라는 길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 일기일회,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오늘의 길을 바르게 살고 싶고 후회 없도록 성실하게 지내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나간 오늘들이 안타깝지만 부끄러운 부분도 있었음을 스스로에게 고백한다. 나 자신의 길 뿐 아니라 옆에서 달려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길을 뜻하는 한자 '도(道)'는 사전 상으로도 길이라는 단순한 의미 외에 이치, 근원, 기능, 방법, 사상, 인의, 덕행 등을 뜻한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서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치도 깨닫게 되고 살아가는 방법도 배우게 되며 인의(仁義)와 덕행(德行)까지도 생각하는 차원 높은 길을 걸어야 된다는 것이리라. 영어로도 그렇다. way는 길이라는 의미 말고도 노정, 방법, 방향, 방식, 진행 의 다양한 뜻을 포함한다. 내가 달리고 있는 이 길은 내가 가고 있는 인생길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딸로서 시작한 인생의 길, 아내로서의 길, 부모로서의 길, 동기간이나 친지로서의 길, 이웃으로서의 길, 벗으로서의 길, 사회인이나 국민으로서 혹은 세계인으로서의 길, 세월을 먼저 걸어 온 어른으로서의 길을 나는 과연 똑바로 가고 있기는 한 건지.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겨울의 길을 달리며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
문득 환청으로 들리는 남편의 경고.
"운전할 땐 딴 생각하지 말고 운전만 생각하라니까."
(에구 이러다가 큰일 나겠네.)
미디어에서 이따금씩 노인들의 운전사고율이 높아간다는 소리가 들린다. 정부나 지자체의 차원에서도 이런 저런 방식으로 운전면허의 반납을 유도하고 있다.
국민과 노인의 공통분모를 가진 나는 누가 종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은근히 신경이 쓰여
"그래, 앞으로 3년만 더하고 그만 두어야지."
착한 다짐을 해본다. 아니 무리일까?

기고자 소개

윤월로

고등학교 교사 역임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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