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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청소년

2020년 여름호
청소년이 힘들 때
국번없이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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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의 어느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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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청소년길잡이
최연길
동대전고등학교 3학년
최연길

할아버지와의 어느 여름날

지난 해 여름방학 때 일이었다. 우리 아빠는 베트남으로 오래 출장을 가신 상태여서 그런 아빠를 오랜만에 만나러 우리 가족은 베트남 여행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 사실 여름방학 때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와 삼촌 가족들과 함께 오랜만에 떠나는 휴가라 그런지 나는 여행 몇 주 전부터 기대에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초등학교 이후에 처음 가는 해외여행이라 더욱 설레고 더군다나 자유여행은 처음이라 풍선처럼 부푼 마음에 내가 직접 베트남어도 공부하고 베트남의 유명한 관광지도 찾아보았다. 여행 일주일 전에는 엄마와 함께 옷도 고르며 신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한가로운 평일 오후 갑자기 누군가가 엄마께 전화를 했다. 전화 통화 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엄마는 전화를 끊은 후 세수만 하고 허둥지둥 옷을 갈아입고 나가셨다. 나에게 “엄마 늦을지도 모르니까 동생이랑 밥 잘 챙겨 먹어” 이 말만 남긴 채 말이다.
나는 순간 ‘아, 무슨 일이 있구나.’ 하는 불안한 느낌을 직감했고 그 후에도 나의 마음도 초조했다. 너무 걱정이 된 나머지 엄마께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소리가 길어졌고 ‘엄마께서 받지 못하는 상황이구나.’를 암시하며 끊으려고 하는 순간 엄마께서 전화를 받으셨다. 엄마께 “엄마 무슨 일 있어?” 라고 묻자 엄마께서는 “어……. 친할아버지께서 갑자기 쓰러지셨어. 뇌진탕으로 한동안 병원에 입원하셔야 할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연길아, 우리 베트남 여행은 나중에 갈까?”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던 여행인데.’
하지만 나는 첫째 딸이었고 엄마께 눈물을 거의 안 보여주었던 씩씩한 딸이었기에 차마 화내지도 울지도 못했다. 너무 속상했지만 나는 그 상황에서 “알겠어.” 이 한마디밖에 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은 후 나는 한참을 울었다. 너무너무 속상했지만, 실컷 운 후에는 할아버지가 아프신데 나는 여행을 더 소중히 여겼던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같은 아파트에 살았고 덕분에 자주 마주쳤고 정도 많이 들었는데 그런 할아버지보다 나는 여행 가는 것을 더 기다렸다는 마음에 내가 너무 미웠고 한동안 할아버지를 뵐 수 없었다. 너무 부끄러워서 말이다. 병문안을 빨리 가야 하는데 생각만 한지 벌써 3주가 되었고 개학을 해서 학교 가랴 숙제하랴 정신이 없었던 나는 할아버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하루는 야자가 끝나고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우연히 엄마를 마주쳤다. 오랜만에 엄마와 산책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엄마께서 “오늘 할아버지 병원 다녀왔는데 할아버지가 너 찾더라. 말도 잘 못 하시는데 말이야. 너도 한번 병문안 가봐야 하지 않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할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폭풍처럼 몰려왔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나를 챙겨주시고 초등학생 때도 밖에서 보면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마주칠 때마다 용돈도 꼭 쥐여주시며 나를 살뜰히 대해주신 할아버지께서 편찮으신데 얼굴 한번 비추러 가지도 않은 내가 너무 미웠고 할아버지께 너무 죄송했다.
엄마의 말씀을 들은 후 바로 그 주 주말 나는 아빠 차를 타고 할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정말 오랜만에 뵙는 것이어서 떨리기도 했고 내가 너무 안 간 탓에 나를 못 알아보시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도 했다. 나는 몸이 너무 건강해서 병원을 잘 안 가기 때문에 이렇게 큰 병원은 정말 오랜만이었고 건물의 크기와 분주해 보이는 간호사분들의 분위기가 나를 압도했다. 아빠의 손을 붙잡고 할아버지의 병실 문 앞에 도착하니 문밖에 환자 이름이 붙어있는 곳에 우리 할아버지의 성함이 쓰여 있었다.
나는 그때 정말 실감이 났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침대에 누워계신 할아버지가 보였다. 할아버지께서는 링거를 맞고 계셨는데 그 모습을 보니 너무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할아버지께 다가가서 할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라고 말하니 할아버지께서는 처음에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고 “얘는 누구야?” 라고 하셨다. 뇌진탕으로 쓰러지신 탓에 뇌에 손상이 가서 약간의 치매가 온 것이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저 연길이에요.” 라고 말하니 할아버지는 정신이 돌아왔는지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라고 하시며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나는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눈도 못 마주쳤지만 할아버지께서 계속 눈을 맞춰주시고 손을 잡아주셔서 감동을 받았다. 때마침 할아버지의 점심식사 시간이 되었고 병원 밥이 나왔다. 할아버지는 아직 식도로 음식을 넘길 힘이 없어서 흰 죽을 드셨다. 나는 간장을 조금 쏟아 잘 비벼서 할아버지께 먹여드렸다. 할아버지께서는 처음에는 안 드신다고 하다가 내가 먹여드리니 곧 잘 드셨다. 잘 드시는 할아버지를 보고 너무 뿌듯했고 어릴 때는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밥을 먹여주셨다는데 지금은 내가 먹여드리는 모습이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밥을 다 드신 후에 내가 직접 약도 먹여드리고 직접 자세도 바꿔 주었다.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어 할아버지께 먼저 가보겠다고 다음에 또 오겠다고 말하며 할아버지와 헤어졌다.
평소에 우리는 ‘효’라고 하면 엄청 거창하고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께 돈을 들여서 무엇을 사주는 것이 효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효’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웃어른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히 효를 실천할 수 있다. 비록 자그마한 편지나 안마라도 어른을 위해 실천하고 어른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면 된다. 나에게 효에 대해 몸소 느낄 수 있도록 해주신 할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제16회 충·효·예 실천우수사례∥고등학교∥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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