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0년 여름호
청소년이 힘들 때
국번없이 1388
24시간 연결됩니다

반장과 과장

본문

함께 사는 세상
공도현
공도현

반장과 과장

올봄부터 K대학 도서관 환경미화 반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로비를 청소하며 도서관 전체 청소를 감독하는 게 임무다. 며칠 전 아침이었다. 그날도 로비를 빗자루질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다가오더니 그날부터 도서관 과장으로 발령받은 누구라며 악수를 청했다. 새 부임지를 살펴보러 아침 일찍 들른 모양이었다.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하자 면이 있었다. 고등학교 동기인 L이었다.
친구는 도서관 과장으로 왔다. 백 명이 넘는 직원 중에 넘버3였다. 학교 다닐 때 본 기억도 없고, 졸업하고도 어느 동기의 장례식 때 분향소에서 본 게 전부였다. 그래도 얼굴을 보자 알아보았다. 친구도 동기회 큰 행사 때마다 앞에 나선 나를 기억해 내었다. 무엇하고 있냐고 친구는 물었다. 도서관 청소한다고 하자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서야 씩 웃으며 배를 쿡 찔렀다. 그러고는 본관에 가봐야 한다며 돌아섰다.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웃음의 의미를 생각했다. 자기는 과장인데 내가 청소반장이라서, ‘자기는 영전했는데 청소하는 동기를 보니 더 우쭐대고 싶었나?’, ‘동기회장을 몇 번이나 하더니 도서관 청소나 하고 있으니 고소했나?’ 별생각이 다 들었다.
부임한 지 일주일이 넘어도 친구는 별말이 없었다. 그는 항상 내가 아침 청소하는 시간에 출근했다. 근엄하게 어깨를 펴고 지나치며 겨우 아는 척을 했고 나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방에 차 한잔하러 오라고 할 만한데도 통 기별이 없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 과장실을 찾았다. 앉았다가 일어날 때까지 친구는 자기 무용담을 이어갔다.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겼고, 아직도 후유증으로 고통스럽지만 이겨내고 최고의 도서관 관리자가 되었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친구가 부임해 왔다고 대학 내에서 근무하는 동기들이 모였다. 교수인 P가 과장과 반장을 초대해 점심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P는 서울대, 프린스턴대학에서 천문학을 탐구한 석학으로 인정받는 교수다. 과장은 그 자리에서 자기 자랑도 모자라 아들 자랑까지 이어갔다. 영전해서 이 자리에 온 자신의 현재 모습에 들뜬 모습이었다. 우리 큰아들도 임용 첫해 수석으로 합격했고, 둘째는 신촌 Y대학 다닌다고 말하려다 참았다. 그 자리의 주인공은 과장이었고 나의 상관이기 때문이었다.
5급 사무관이 그리 대단한 줄 처음 알았다. 친구는 끝내 도서관 직원 누구에게도 내가 자기 친구라는 걸 알리지 않았다.  물론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곡절이 많았겠지만, 5급이 되면 친구를 친구라 부르지 못하는지 묻고 싶었다.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리라 마음먹었다. 될 수 있으면 마주치지 않았다. 멀리 보이면 돌아갔고, 말을 할 때는 깍듯이 경어를 썼다.
그러던 어느 날 로비를 가로지르다 친구와 딱 마주쳤다. 도서관장과 식사하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스치는데 친구가 손을 내밀었다. 악수도 아니고  사내연애 하는 애인처럼 얼굴은 앞으로 보며 다른 사람 모르게 살며시 잡았다. 나도 홀린 듯 내밀어 서로 꼭 움켜쥐었다.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며칠 뒤, 친구는 그동안 미안했다며 사정을 얘기했다. 전번 근무지역에서 있을 때 경비를 서는 할아버지뻘 되는 친척 때문에 난처했던 얘기를 했다. 별명이 과장할배로 통할 만큼 떠벌리고 다녀 직원들 볼 면목이 없었다고 했다. 친구 말을 듣자 이해가 되었다.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겠으니 그런 걱정을 말라고 안심시켰다. 친구는 나에게 지금은 과장, 반장이지만 몇 년만 지나면 장우, 도현아니겠냐며 웃었다.
언제까지 같이 근무할지 모르지만 한 건물에서 일하는 것도 인연이라면 대단한 인연인데 친하게 지내자며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제대로 악수했다

기고자 소개

공도현

수필가, 계간 《수필세계》 등단

수필집 『아픈 만큼 사랑합니다』

장애인근로자문학상 수상

맨위로 이동 맨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