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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책장수, 조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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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야 놀자
신현배
신현배

조선 최고의 책장수, 조생

조선 시대에 서점은 관영 서점과 민영 서점이 있었다. 관영 서점은 나라에서 책을 간행하여 팔던 곳인데, 조선 시대에는 교서관이 그 역할을 했다. 교서관은 출판을 맡은 관청으로, 경서ㆍ문집 등을 펴내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민영 서점은 민간인이 영리를 목적으로 출간한 책을 팔던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민영 서점이 언제 처음 생겨났는지 정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다만 민간인이 영리를 목적으로 간행한 책인 방각본이 나온 뒤부터 민영 서점이 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1576년 7월 출간된 백과사전인 『고사촬요』 끝장에는 “수표교 아래 북쪽 수문 입구에 있는 하한수의 가각판(家刻板)을 사고 싶은 사람은 찾아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한수는 개인이 책을 만들어 팔던 곳으로 출판사 겸 민영 서점이라 할 수 있다. 이로 미루어 민간인이 영리를 목적으로 한 상업 출판과 민영 서점이 16세기 후기에 서울에 처음 생겨났음을 알 수 있다.
방각본은 『동몽선습』ㆍ『천자문』 등의 아동용 학습서, 사서삼경 등 유교의 경전과 해설서, 『사략』ㆍ『통감절요』 등의 역사서, 『고사촬요』ㆍ『유서필지』 등의 실용서, 『구운몽』ㆍ『사씨남정기』 등의 소설류가 있다.
조선 시대에는 민영 서점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책이 필요한 사람들은 서적 중개상에게 주문하여 책을 샀다. 서적 중개상은 날마다 서당ㆍ양반집ㆍ관청ㆍ저잣거리 등을 돌아다니며 책을 팔았다. 이들 책 거간꾼을 ‘책쾌(冊儈)’ㆍ‘서쾌(書儈)’라고 불렀다. 18세기 말에 서울에서 부동산 거간꾼을 ‘가쾌(家儈)’라고 부르듯이 중국풍의 이름이었다.
책쾌는 책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의 거래를 중개할 뿐만 아니라, 책을 싼 값에 사서 이윤을 붙여 파는 일도 했다. 이러한 책 거간꾼은 15세기쯤에 처음 등장했는데,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인 영ㆍ정조 때 서울에는 수백 명의 책쾌가 영업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책장수는 조생이었다. 그는 특이한 용모와 기이한 행적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실학자 정약용은 그에 대한 인상을 이렇게 기록했다.
“조신선이라는 자는 책장수로, 붉은 수염에 우스갯소리를 잘한다. 눈에는 번쩍번쩍 신광(神光)이 있었다.”
사람들은 조생이 어디 출신이고 어디 사는지 몰랐다. 그리고 아무도 그가 밥을 먹는 것을 본 적이 없고, 저녁에는 술에 잔뜩 취하여 어디론가 사라졌다. 조생은 날이 밝으면 저잣거리로 서당으로 양반집으로 나는 듯이 달려가 책을 팔았다. 옷소매에 책을 잔뜩 넣어 가지고 다녔는데, 책을 모두 꺼내면 방 안에 수북이 쌓였다. 조생은 이런 말을 자주 했다고 해.
“세상에 있는 책이 모두 내 책이지요. 이 세상에서 책을 아는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어요.”
조생은 1771년 봄에 서울에서 자취를 감춘 적이 있었다. 그때 서울에서는 ‘『명기집략』 사건’이 일어나 수백 명의 책쾌들이 붙잡혀가 목숨을 잃거나 귀양을 떠났다. 청나라 책인 『명기집략』에 조선 태조 이성계를 모독하는 글이 실려 있었는데, 이 책을 유통시킨 책쾌들을 잡아들여 큰 벌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조생만은 이 사건이 일어날 줄 미리 알았는지 일찌감치 몸을 피해 화를 면했다. 그는 사건이 잠잠해진 뒤에 다시 나타났는데, 사람들은 앞날을 내다볼 줄 아는 그를 ‘조선선(曺神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8세기에는 주로 부녀자들을 상대로 일정한 값을 받고 소설을 빌려 주는 세책점이 서울에 생겨나 인기를 누렸다. 오늘날의 도서 대여점이라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 한글로 쓰인 소설들은 한글을 익힌 부녀자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수호전』ㆍ『서유기』ㆍ『삼국지』 등 한글로 번역된 중국 소설을 비롯하여 『사씨남정기』ㆍ『장화홍련전』 등 한글로 된 소설들은 없어서 못 볼 정도였다.
세책점은 가난한 선비들이 생계가 어려워지자 밥벌이나 하려고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한글 소설책을 사다 베낀 뒤 책을 매고, 책장마다 들기름을 발라 찢어지는 것을 막았다. 세책점에서는 놋주발 뚜껑이나 주발대접 등을 담보로 잡은 뒤 책을 빌려 주었다. 셋돈은 책을 돌려받을 때 받았다. 책을 빌려가는 계층은 양반ㆍ평민ㆍ노비 등 다양했다. 세책점은 서울에만 있어, 시골로 시집간 여성들이 서울 친정에 다니러 왔을 때 많이 빌려 보았다고 한다. 친정집에 며칠씩 묵으면서 소설 읽기에 푹 빠져 지냈다. 18세기에 세책점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는지 실학자 이덕무는 이런 내용의 글을 남겼다.
“부녀자들이 집안일을 게을리 하면서 소설을 빌려 읽느라 가산을 탕진하고 있다. 그들이 소설 읽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부녀자들의 ‘소설 읽기 열풍’은 가라앉지 않았다. 특히 세책점의 소설은 부잣집이나 사대부 집안의 여인들에게까지 인기가 높았다. 그들은 ‘책비’라고 불리는 입심 좋은 여종을 머리맡에 불러 앉혔다. 그들이 목소리를 바꿔 가며 감정을 실어 읽어 주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책비는 세책점에서 빌려온 소설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머리맡에는 ‘짠보’라는 수건이 준비되어 있었다. 책비는 소설책을 읽다가 슬픈 대목이 나오면 사대부 집안의 여인에게 미리 알려 주었다. 그러면 여인은 이야기를 듣다가 수건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수건을 많이 쓸수록 책을 읽어 주는 값이 더 올라갔다고 한다. 세책점은 근대에 접어들어 값싼 방각본 소설이 쏟아져 나오면서 점차 사라져 갔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과 같은 서점이 등장한 것은 구한말이다. 당시에는 서점들이 대부분 출판을 겸했는데, 대표적인 서점으로는 회동서점ㆍ대동서시ㆍ중앙서관ㆍ광학서포 등이 있었다

기고자 소개

신현배
시인, 역사 칼럼니스트
1986년 조선일보, 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1983년 창주문학상, 2012년 소천문학상 수상
저서 :
<엉뚱 별난 한국사>, <엉뚱 별난 세계사>, <2000년 서울 이야기>,
<세계사로 배우는 법 이야기> 등과
시집 <매미가 벗어 놓은 여름>,<햇빛 잘잘 끓는 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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