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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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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DongJu; The Portrait of A Poet)

본문


영화로 보는 세상
하수민
하수민

동주
(DongJu; The Portrait of A Poet)

감독 이준익
각본 신연식
출연 강하늘(윤동주), 박정민(송몽규), 김인우(고등형사), 최희서(쿠미), 문성근(정지용)
한국, 110분, 2016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운 <서시>와 윤동주. 시(詩)와 시인을 이해하기보다는 시험을 대비해서 암기하기에 급급했다. 문제집 속의 시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고, 시인 윤동주는 많은 저항시인 중 하나에 불과했다. 후에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읽고 윤동주의 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의 짧은 생애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북간도 용정에서 태어나 해방 직전인 1945년 2월 16일, 28세의 나이에 일본에서 삶을 마감한 비운의 청년이었다.
‘윤동주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하나인데 어째서 그의 삶을 다룬 TV나 영화를 본 적이 없는 걸까?’ 하는 이준익 감독의 의문에서 영화 <동주>가 탄생했다고 한다. 영화 <동주>는 시인 윤동주, 인간 윤동주, 청춘 윤동주에 대해 처음으로 보여준다. 저항시인이 아닌 윤동주를 <동주>에서 비로소 보았다.
시나리오를 쓴 신연식 감독은 윤동주가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시인이 되지 못한 청춘’이라는 점에 가장 마음이 움직였다고 한다. 그랬다. 윤동주는 살아생전 시집 한 권 내지 못했고 시인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그가 시를 쓰지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말로 된 시를 쓰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던 불행한 시대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대는 그의 목숨까지 너무 일찍 빼앗아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세우려 했던 비석을 손자가 앞서 가져갔다. ‘시인윤동주지묘’. 가족들은 그렇게라도 젊은 시인의 넋을 위로하려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영화 <동주>는 윤동주의 사촌이자 친구인 송몽규의 이야기도 보여준다. 함께 자랐지만, 성격은 정반대인 두 사람. 혁명가 기질인 송몽규는 적극적이고 자신의 주장이 뚜렷한데다가 문학에도 뛰어난 소질이 있어 어린 나이에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등 윤동주와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형처럼 보호자처럼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송몽규의 모습이 오히려 주인공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윤동주도 활발한 성격이었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감성적인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더 소극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윤동주는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일제의 만행으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시를 계속 썼다. 지금 남아 있는 그의 시에는 그 시대의 아픔,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청춘의 고민이 녹아 있다. 서정적으로만 느껴져 ‘저항시’라는 말에 갸우뚱 했었는데, 영화 <동주>를 보면서 깨달았다. 많은 재능 있는 시인들이 일제를 찬양하는 시를 쓰며 편한 길을 갈 때, 그는 부끄러워할 줄 알았고 순수한 마음을 시에 담았다. 그래서 그가 떠난 지 80년이 다되어가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그의 시를 좋아한다.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꾸준히 그를 추모하고 그의 시를 알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오랫동안 찾는 이 없던 그의 무덤을 찾아내고, 그의 죽음에 대해 꾸준히 조사하는 데도 일본인들의 도움이 컸다고 하니, 윤동주의 시는 국경을 넘어 사람을 움직인 것이다.
윤동주의 고향이자 무덤이 있는 중국 연변자치주의 교과서에도 그의 시가 실려 있으며 한국어 시집도 출간되어 있다고 한다. 그쪽에서는 윤동주 시인을 조선족문학의 대표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 특히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하늘, 달, 별, 바람 등이 북간도의 자연환경에서 나온 정서이며, 그가 사용한 단어나 문장에 당시 북간도의 어법이 녹아 있어 특유의 시어를 만들어내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영화 <동주>는 흑백영화다. 이준익 감독은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서’라고 농담했지만, 사실 흑백이 컬러에 비해 저렴하지는 않다. 감독이 흑백을 선택한 이유는 그 시대를 더 잘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흑백화면에 나타난 일제강점기의 북간도는 더 현실적으로 보였고 윤동주와 송몽규는 실제 사진에서 나온 듯한 느낌이었다. 또 흑백화면 덕분에 인물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어서 그들의 아픔과 슬픔이 더 절절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배우가 무척 중요했는데 강하늘 배우와 박정민 배우도 물론 제 몫을 다해냈지만, 일본인 쿠미 역의 최희서 배우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 신연식 감독이 지하철에서 보고 캐스팅했다는 일화가 이제는 유명한데, 10년 가까이 단역만 하다가 <동주>에서 잠깐이지만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여 이준익 감독의 다음 작품 <박열>에서는 주연이 되었다. 최희서 배우는 진짜 일본인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연기로 2017년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등 열 개가 넘는 상을 받았다.
영화는 다큐가 아니다 보니 몇 가지 실제와 다른 부분이 있다. 먼저, 윤동주가 만나는 한국 여인과 일본 여인 모두 가상의 인물이다. 특히 일본 여인 쿠미는 시집을 내는 데 크게 도움을 준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이는 모두 픽션이다. 윤동주는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필사본 세 부를 만들어 한 부는 연희전문의 이양하 교수에게, 한 부는 후배 정병욱에게 주고, 한 부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다. 정병욱은 학병으로 끌려가기 전날, 어머니에게 필사본을 잘 숨겨달라고 부탁했고 다행히 그는 살아 돌아왔다. 친구 강처중은 윤동주가 일본에서 편지로 보낸 시들을 귀중하게 보관하고 있었으며, 동생 윤일주는 윤동주가 시를 쓴 공책을 가지고 있었다. 해방 후에, 세 사람이 서울에서 만났고, 1948년 정음사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판하게 되었다. 긴 시간과 여러 사람의 정성이 더해 이뤄낸 기적이었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데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 또 있으니 바로 故 문익환 목사이다. 윤동주의 시에 나오는 '십자가'가 있는 '교회'에 문익환의 아버지가 목사로, 윤동주의 할아버지가 장로로 있었다. 문재린 목사는 윤동주의 장례를 집례하기도 했다. 몇 개월 차이로 태어나 같은 젖을 먹고 함께 자란 세 친구, 윤동주, 송몽규, 문익환은 함께 일본에 갔다가 문익환만 먼저 조선으로 돌아왔고, 송몽규와 윤동주는 ‘조선독립 망상을 품은 죄’로 일제에 체포되었다가 ‘후쿠오카 형무소 생체실험’의 희생양이 되었다. 수십 년이 흐른 뒤에야 밝혀진 처참한 진실에 가슴이 울컥했다.
너를 통째로 집어삼킨 어둠
네 살 속에서 흐느끼며 빠져나간 꿈들
온몸 짓뭉개지던 노래들
화장터의 연기로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너의 피 묻은 가락들
이제 하나 둘 젊은 시인들의 안테나에 잡히고 있다
- 문익환 <동주야> -
애국! 항일! 크게 부르짖는 것보다 더 큰 울림을 준 영화 <동주>. 그저 한 시인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 시대가 왜 아픔인지, 일제가 무엇을 짓밟았는지, 우리의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는 잊지 말아야 하겠다.
송몽규가 윤동주에게 말한다.
“니는 계속 시를 쓰라. 총은 내가 들꺼이까.”
펜은 칼보다 강하다! 시는 총보다 오래 기억된다!

기고자 소개

하수민

영화평론가

베이징영화대학 중국영화사 석사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영화에세이 『영화 속속풀이』 1, 2,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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