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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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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벌새
(House of Hummingbird)

하수민
하수민
한국, 38분, 2019년

감독·각본 김보라
출연 박지후(은희), 김새벽(영지), 정인기(은희 아빠), 이승연(은희 엄마)
2019년 한국영화계는 온통 <기생충> 이야기였다. 2020년 2월,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이라는 기적 같은 일까지 벌어졌고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2020년 하반기에 영화 <미나리>가 해외에서부터 화제가 되어 2021년 3월, 국내개봉을 하며, 비록 <기생충>의 흥행에는 반의 반도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 사이, 2019년 가을에 개봉한 한국영화가 있다. 역시나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아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18회 트라이베카국제영화제, 제45회 시애틀국제영화제, 제28회 이스탄불국제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25관왕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국제적 호평 속에서도 한국관객의 관심은 크게 받지 못했고 영화 <벌새>는 스크린을 스쳐지나가듯 사라졌다. 김보라 감독은 ‘상은 그만 받아도 되니까 사람들이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라고 했는데,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기업의 자본을 얻지 못한 독립영화의 운명이 그러했다. 그러나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영화 보기 쉬운 세상이라 <벌새>는 작지만 힘찬 날갯짓을 아직도 계속하고 있다. 다행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 ‘벌새’는 5㎝밖에 안 되지만, 1초에 아흔 번이나 날갯짓을 하며 바쁘게 꿀을 찾아다닌다. <벌새>의 주인공은 벌도 아니고 새도 아닌, 혹은 벌이기도 하고 새이기도 한, ‘벌새’.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중학생 ‘은희’이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 있어 1994년이 배경이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 힘든 일이든 기쁜 일이든 나만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자기 것으로 끝나지만, 이걸 공동의 기억으로 만드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인 것 같다.”
김보라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를 상기시킨다. 마찬가지로 1994년이 배경이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그 시대의 추억과 낭만을 보여줬다면, <벌새>는 상처와 아픔을 드러낸다. 공기처럼 우리 주위에 존재했던 폭력, 차별, 모순. 그리고 수많은 목숨을 강바닥에 빠뜨렸던 사건. 어느 시대나, 어느 세대나, 고민이 있겠지만, 그 시절 중2의 삶은 더욱 힘겹게 보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하고 울컥했다.
떡집을 운영하며 힘들게 자식 셋을 키우는 평범한(?) 엄마와 아빠. 대치동에 사는데 공부를 못해서 강북으로 고등학교를 다니는 날라리 언니. 공부는 잘하지만, 인성이 의심스러운 오빠. 바람둥이에 마마보이 기질이 보이는 남자친구. 가끔 배신도 하는 단짝친구. 은희를 연예인처럼 보는 여자후배. 그리고 한문학원 선생님. 소녀 은희를 둘러싼 사람들, 삶을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관계를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는 걸 보여준다.
중2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어른들과 똑같은 세상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다. 물론, 싸우다가 다음날 아침에는 함께 TV를 보며 웃는 부모님을 은희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무심하던 아빠의 눈물이나 폭력적인 오빠의 울음도 그 의미를 알기 힘들 것이다. 무엇보다도 엄마 역시 한때는 중학생 소녀였다는 사실을 상상도 못할 것이다.
은희 엄마는 어린 시절 오빠에게 폭력을 당했고 결혼해서는 외도하는 남편과 넉넉지 않은 살림으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등장하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엄마에게도 자신의 이름이 있는데, ‘엄마’로만 살아가야 하는 회한이 느껴졌다. 밥과 감자전을 챙겨주고, 은희에게 잘해준다는 선생님께 떡을 선물로 보내는 것이 최선이었을 엄마의 사랑. 다정하고 살뜰하게 챙겨주지는 못하지만, 아마 엄마는 은희가 자신과 같은 인생을 살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공부 열심히 해서 여대생이 되면 벗어날 수 있다고 믿으면서. 하지만, 열심히 살아낸 은희의 미래가 <82년생 김지영>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면 엄마는 어떻게 말했을까?
1994년, 은희 주위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미래의 명문대와 비싼 집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고 강요한다.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경험한 아이들이 어른이 된 지금, 세상은 더 치열해진 입시경쟁과 팽배해진 물질만능주의에 고통 받고 있다. 적어도 ‘은희’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으리라고 <82년생 김지영>에게 또 다른 삶이 가능하다고, <벌새>는 말하고 있다.
‘중2병’이라는 말이 언제 생겨났던가? 1994년의 중학생은 그렇게 무섭지 않다. 중학생은, 특히 여중생은 무시와 폭력, 차별을 견뎌야 했다. 그런 은희에게 처음으로 ‘맞서 싸우라’고 말해준 어른이 있다. 서울대 휴학 중인 한문학원 선생님 영지는, 아마도 운동권 학생이었던 듯하다. ‘그렇게 좋은 대학을 다니면서도’ 세상이 힘들다고 말하며 어른도 불안하고 고민이 있다는 것을 은희에게 가르쳐준다. 은희의 고민을, 훈계하거나 충고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며, 은희가 스스로 알 수 있게 도와주었다. 최고의 위로는 들어주는 것이었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라는 커다란 사건은 작고 어린 은희의 삶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은희는 비로소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었고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배가 침몰해서 수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무엇이 달라졌는지 생각해 본다. 1994년에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폭력을 휘두르는 오빠, 강압적인 교사가 있었지만, 적어도 가족이 한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고, 친구와는 얼굴을 보고 대화하며 손을 잡고 걸었다. 지금의 중2들이 그때의 중2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폭력과 차별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불공평하고 위선이 넘친다.
그래도 <벌새>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지금의 ‘은희’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이끌어줄 ‘한문선생님’이 있어야 한다고. 김보라 감독은 실제 만났던 그 선생님을 통해 ‘한 사람의 작은 배려가 누군가에게는 평생에 남을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 자신이 그 자양분을 나누게 된 것이다.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감독은 시대 구현을 위해 소품까지 세세하게 챙겼을 뿐만 아니라 ‘책’도 ‘책임감을 가지고 등장시키고’ 있다. 스탕달의 《적과 흑》은 은희 캐릭터를 나타내는데, 자기 안의 목소리가 많고 괴로워하는 소렐과 맞닿아 있어서 선택했다고 한다. 또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 그 삶의 세 이야기》는 굉장히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영지 캐릭터를 나타내며, 은희도 커서 크눌프처럼 단독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선택했다고 한다.
영화 <벌새>에서 아빠와 오빠, 담임선생님까지 남자들은 폭력적인 가해자의 모습이 주로 보여서 아쉬운 면이 있지만, 남녀의 대립이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모습이 그랬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힘겹게 삶을 살아가며 은희처럼 아파하고 슬퍼했을 것이다. 어쩌면 외삼촌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후회와 반성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2를 지나온 모든 이에게, 그리고 지금 중2들에게 <벌새>를 전하고 싶다

기고자 소개

하수민

영화평론가

베이징영화대학 중국영화사 석사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영화에세이 『영화 속속풀이』 1, 2,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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